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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조수미 사진
소프라노 조수미 ⓒ네이버 이미지

 

 

 

세계적인 소프라노 트로이카 홍혜경 신영옥 조수미는 한국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 뛰어난 재능과 열정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홍혜경은 깊이 있는 음색과 섬세한 표현력으로, 신영옥은 탁월한 기교와 감성적인 해석으로, 조수미는 놀라운 음역대와 힘 있는 무대 매너로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홍혜경 신영옥 조수미에 대해 자세히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홍혜경

홍혜경은 1959년 7월 4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데뷔 초 수브레토와 레제로 경력 중반에는 리릭 레제로 현재는 리릭과 스핀토까지 아우르는 전형적인 리릭 소프라노입니다. 조수미와 신영옥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3대 소프라노로 손꼽힙니다. 예원학교 3학년 재학 중 도미하여 줄리아드 음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 엘리자베스 비숍과 엘렌 파울을 사사하였습니다. 1982년 메트로폴리탄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이후 1983년 미국을 대표하는 젊은 성악가 4인으로 선정되었고, 1986년에는 워싱턴 오페라 가이드 선정 올해의 예술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007년에는 노만빈센트필어워드를 수상하며 그녀의 예술적 성취를 인정받았습니다. 그녀는 1984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티토왕의 자비의 세르빌리아 역으로 데뷔하였습니다. 2024년에는 메트로폴리탄 데뷔 40주년을 맞이합니다. 그녀의 음반으로는 1998년 홍혜경 오페라 아리아, 1999년 홍혜경 한국 가곡집, 2000년 Bellezza VocaleBeautiful Opera Duets 등이 있습니다. 그 외 다양한 오페라 작품과 한국 가곡을 통해 그녀만의 음악적 색깔을 선보였습니다. 그녀는 가정에 충실하면서 무대 활동은 남들에게 잊히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적절히 조절하는 편입니다. 한 달 이상 집을 비우지 않는 것이 그녀의 철칙이라고 합니다. 특별한 공연이 아니면 해외 공연은 삼가는 편인데요. 공연 활동도 중요하지만 가정을 그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서양 가수들에 뒤지지 않는 체격 조건과 윤곽이 뚜렷한 얼굴로 오페라 가수로는 제격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전형적인 리릭 소프라노로서 명료한 창법으로 청아하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돋보입니다. 오페라에서는 극적 기복이 뚜렷한 감정 연기와 노래를 장기로 합니다. 라보엠의 미미, 코지 판 투테의 데스퍼나,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사랑의 묘약의 아디나, 투란도트의 리우 역에 두각을 나타내는데요. 특히 모차르트 오페라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으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조수미와 신영옥과는 서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활동하고 있는데요. 1991년 메트로폴리탄에서 열린 리골레토의 질다 역을 맡은 홍혜경이 공연 중 컨디션 문제로 인해 2막에서 신영옥에게 긴급하게 대체를 요청한 사건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당시 홍혜경은 잘 나가는 한국 소프라노로서 갑작스러운 컨디션 난조로 인해 1막만 공연할 수 있었고, 이에 신영옥에게 기회가 돌아갔습니다. 신영옥은 평소 리골레토의 질다 역을 보며 자신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그녀에게 황금과 같은 기회였습니다.

 

 

신영옥

신영옥은 1961년 7월 3일 서울 태생으로 선화예술중학교와 선화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줄리어드 음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였습니다. 클라우디오 핀자를 사사하였습니다. 그녀는 동아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하며 고교생 신분으로는 최초로 입상한 기록을 세웠고, 이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인터내셔널 콩쿠르와 로렌 자카리 콩쿠르, 올가 쿠세비츠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녀는 데뷔 초기에는 리릭 콜로라투라 음역의 가볍고 민첩한 가창이 특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리릭 레쩨로 소프라노로 변화하며 무게감 있는 레가토를 지닌 가창 스타일로 발전했습니다. 그녀는 오페라 무대뿐만 아니라 콘서트와 리사이틀, 페스티벌 무대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면서 많은 격찬을 받았습니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리골레토, 사랑의 묘약, 청교도, 가면무도회, 몽유병의 여인 등 다양한 이탈리아 오페라 레퍼토리에서 활약했는데요. 또한 정확한 발음과 절제된 발성으로 다양한 언어로 구성된 가곡 해석에도 뛰어나며, 프랑스와 이탈리아, 러시아 가곡들을 모은 앨범 A Dream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고운 소리결과 정교함, 맑은 음색을 지녀 고운 피아니시모 처리로 서정적인 노래에서 특히 돋보이는데요. 2010년대에 들어 중고음이 풍부해지며 보다 더 무거운 리릭 소프라노로서의 변모를 드러냅니다. 리골레토의 질다, 사랑의 묘약의 아디나, 루치아의 루치아, 진주 조개잡이의 레일라, 특히 리골레토의 질다 역과 루치아 역에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런 음악적 성공은 엄격한 연습과 끈기, 인내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여왔으며 여러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부모님의 지지와 지원을 받으며 이겨냈습니다. 8세에 성악 훈련을 시작하여 소프라노로서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보컬 실력을 갈고닦으며 자신의 기술을 완성하고, 유명한 작곡가의 작품을 연구하고, 소프라노 레퍼토리의 복잡한 부분을 익히는 데 수많은 시간을 바쳤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성악에 향한 갈망과 열정을 품고 많은 도전을 하였지만 번번이 좌절을 맛보곤 했습니다. 많은 난관과 장애물에 직면했는데요. 1990년 그녀의 나이 29세 때 그녀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인터내셔널 콩쿠르에 도전합니다. 그녀는 이 오디션을 마지막으로 여겼으며 만약 합격하지 못했다면 성악가로서의 길을 포기할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나이 제한이 30세까지였기 때문에, 이것이 그녀에게는 마지막 기회였던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그녀는 좋은 성적으로 콩쿠르에 우승하며 이때부터 뛰어난 소프라노로서의 역량을 국제적인 무대에서 한껏 뽐내게 됩니다. 그녀의 흔들리지 않는 끈기와 인내심 덕분에 그녀는 역경을 극복하고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수많은 도전과 좌절로 그녀는 더 많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조수미 

조수미는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 1962년 11월 22일 경상남도 창원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노래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선화예술중학교와 선화예술고등학교를 거쳐 1981년 서울대학교 성악과 역대 최고 점수로 수석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를 중퇴하고 이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유학 생활 중 조수미는 나폴리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렸고, 트리에스테의 베르디 극장에서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게오르그 솔티 같은 명 지휘자들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카라얀에게서 신이 내린 목소리라며 극찬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찬사를 받은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목소리를 오래도록 유지하기 위해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역은 맡지 말아 달라고 따뜻한 조언을 받았는데요. 카라얀은 진심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신이 금세기 인류에게 내린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90년대 초중반에 그녀가 맡았던 배역이 리릭 콜로라투라 음역이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보다는 로시니 오페라 주인공 역이 훨씬 어울린다는 평이 상당수입니다. 리골레토의 질다 역은 그녀가 무려 15년 동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 역할입니다. 이곳에서 연기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역사상 최고의 루치아라는 평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녀는 루치아를 이곳에서 7번 연기하였습니다.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1993년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을 15번의 공연 중 무려 10회를 공연하였습니다. 그녀의 음색과 창법은 서정적이면서도 콜로라투라의 기교가 화려하며 테크닉이 완벽에 가까운데요. 이는 오페라에 익숙하지 않은 청중에게도 호응을 일으키며 아리아가 줄 수 있는 감동을 높은 수준으로 구현해 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동양인 최초로 국제 6개 콩쿠르를 석권하고 황금기러기상과 그래미상 클래식 부문을 수상하는 등 많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프랑스에서 데뷔할 때도 요정도 조수미의 노래에 귀 기울인다는 극찬을 받았는데요. 이탈리아의 밀라노 신문은 동양에서 온 소프라노가 서양을 가르친다며 오페라의 혁명이라고 극찬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40여 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하였습니다. 영화음악 가요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며 목소리로 할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빛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또한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초빙석학교수로 임명되어 과학과 예술의 공존을 가르치는 등 교육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왕성한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과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그녀는 유네스코 평화예술인으로서 다양한 자선 콘서트에 참여하고, 세계적인 엔터테이너들과 함께하는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내후년에는 프랑스에서 조수미의 이름을 딴 성악 전문 국제콩쿠르도 창설될 예정입니다. 그녀의 예술적 여정과 성취는 한국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녀의 음악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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