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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크로이처 소나타 표지 사진
ⓒRene Francoise Xavier Prinet <Kreutzer Sonata> 1901

 

베토벤 크로이처 소나타의 배경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 A장조 Op.47는 일명 크로이처 소나타로 더 유명합니다. 그가 남긴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 아홉 번째 작품입니다. 악보 표지에 '거의 협주곡처럼, 매우 협주곡과 같은 스타일로 작곡된 바이올린 오블리가토에 의한 피아노 소나타'라고 쓰여 있는데요. 이는 곡의 의도와 성격을 알리고자 그가 직접 적은 것이라고 합니다. 1803년에 작곡된 크로이처 소나타는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아름다운 걸작으로 꼽힙니다. 동시에 역사상 가장 뛰어난 바이올린 소나타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아주 화려하면서도 강렬하며 깊은 음악성을 지니고 있는데요. 이 곡에 영감을 받은 톨스토이는 1890년에 크로이처 소나타를 출판했습니다. 1803년 봄, 베토벤은 영국을 주 무대로 활동하던 영국 국적의 바이올리니스트 조지 브리지타워의 연주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보게 됩니다. 브리지타워의 현란한 기교는 비엔나 음악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베토벤도 그의 연주에 매료되었습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만나게 되었고 만나자마자 급속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음악적으로 친분을 쌓아갔습니다. 브리지타워는 그에게 자신을 위한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해 줄 것을 요청했고, 그는 이를 흔쾌히 수락합니다. 당시 그는 이미 1802년부터 구상한 새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하는 중이었습니다. 브리지타워의 요청으로 이 소나타 작곡은 속도를 내게 되었고, 얼마 후 곡은 완성되어 초연을 하게 됩니다. 초연은 1803년 5월 빈의 아우가르텐에서 브리지타워의 바이올린과 베토벤의 피아노 연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날 브리지타워는 명연주를 보여주었고 베토벤은 매우 흡족했으며 관객들도 열렬한 환호와 박수로 호응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초연 후 그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여성에 대해  모욕적으로 말한 브리지타워에게 화가 나서 헌정을 철회했는데요. 이후 그는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 루돌프 크로이처에게 곡을 헌정합니다. 그러나 크로이처는 이 곡의 진가를 알아차리기는커녕 이 위대한 소나타를 난폭하고 무식한 곡이라고 폄하하면서 단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크로이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크로이처는 이 곡 덕분에 음악사에 남는 인물이 되었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구성과 특징

 

크로이처 소나타는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연주 시간은 약 40분 정도입니다. 1악장 Adagio Sostenuto--Presto은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다음에 프레스토로 이어집니다. 3/4박자의 18마디 서주가 붙은 소나타 형식의 악장입니다. 바이올린 솔로가 A장조로 시작하지만 피아노가 들어오면서 점차 A단조로 변화하며, 주요 부분인 A단조의 프레스토로 이어집니다. 마치 두 연인이 대화하듯 바이올린이 말을 걸고 피아노가 응답하면서 두 악기가 대화풍의 연주를 전개하는 것 같습니다. A단조의 프레스토로 접어들어서는 바이올린이 스타카토로 강렬하게 제1주제를 제시합니다. 이어 화려한 카덴차를 거쳐 E장조의 우아한 제2주제가 바이올린으로 제시됩니다. 제1주제와는 대조적으로 제2주제는 온화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이내 다시 경쾌하게 질주하는 듯한 협주를 들려줍니다. 2악장 Andante Con Variazioni은 1악장과 대조적으로 피아노의 온화한 선율로 시작하는 2악장은 낭만적인 안단테 주제와 4개의 변주곡, 코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이 F장조의 주제를 제시하고 바이올린이 되풀이합니다. 제1변주는 피아노가 주도하고 바이올린은 리듬으로 맞장구치듯 보조하면서 아기자기하고 명랑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제2변주는 바이올린이 주도하면서 32음표를 화려하게 연주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제3변주에서는 F단조로 바뀌고 레가토 부분에서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서로 어우러져 감성적이고 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마지막 제4변주에서는 다시 F장조로 돌아옵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대등한 활약을 하면서 정교하고 섬세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세밀한 음의 움직임이 전체적으로 이뤄지면서 여유롭고 우아한 낭만을 표출합니다. 변주가 끝난 후 코다에서는 피아노시모로 차분히 끝을 맺습니다. 3악장 Finale. Presto는 휘몰아치는 타란텔라(이탈리아 나폴리 지방에서 유래된 경쾌하고 빠른 템포의 춤곡) 리듬이 특징이며 격렬한 2중주로 끝맺습니다. 피아노가 매우 강하게 으뜸화음을 연주하며 시작하는 3악장은 바이올린이 비상하는 듯한 연주로 경쾌한 제1주제를 제시합니다. 이어 경과부를 거쳐 바이올린으로 E장조의 제2주제가 등장합니다. 제2주제도 빠르고 화려한 타란텔라 리듬으로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마치 춤추듯 자유분방하게 변주되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이 두 주제는 3악장을 지배하며 펼쳐나갑니다. 원래 3악장은 바이올린 소나타 6번의 3악장을 위해 작곡되었으나, 너무 화려하여 맞지 않다고 생각한 베토벤은 마음을 바꿉니다. 6번에 사용될 변주곡 악장은 새로 작곡하였고 크로이처 소나타에 전용했습니다.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에 대한 생각

톨스토이는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에 영감을 받아 같은 이름의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는 그가 59세였던 1887년에 집필을 시작해 1890년에 출판됩니다. 소설은 포즈드니셰프가 기차에서 만난 '나'에게 아내를 죽인 사연을 털어놓으면서 시작됩니다. 그를 끔찍한 질투에 사로잡히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였습니다.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인 아내를 위해 포즈드니셰프는 아내와 바이올리니스트 투르하체프스키의 2중주를 주선하고, 손님들을 초대해 이들의 연주를 들려줍니다. 이때 두 사람이 연주하는 곡이 바로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입니다. 

 

"그는 바이올린을 가져와 케이스를 열고 어느 부인이 수놓아줬을 덮개를 벗기고 바이올린 줄을 맞추었습니다(.....) 이후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고 나서 청중을 둘러본 후, 서로에게 뭐라 말을 하고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먼저 협화음을 잡았습니다. 그는 바이올린 음에 집중한 채 진지하고 엄숙하고 멋진 표정을 짓고 주의 깊게 손가락으로 현을 튕겨 피아노 소리에 화답했습니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했습니다. 처음 나오는 프레스토를 아세요? 아시냐고요!" 그는 소리쳤다. "으...! 이 소나타는 정말로 무시무시한 음악입니다. 특히 이 부분은 더욱 그렇습니다. 아니 음악은 정말로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그게 도대체 뭔가요?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레프 톨스토이 <크로이처 소나타>, 펭귄클래식

 

톨스토이는 포즈드니셰프의 입을 통해 1악장에 나오는 프레스토를 가리켜 무시무시한 음악이라고 합니다. 포즈드니셰프는 마치 불륜의 현장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격정적이면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2중주 장면을 지켜봅니다. 그는 아내와 바이올리니스트의 관계에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낀 나머지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맙니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집에서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식사하고 있던 아내에게 칼을 휘두른 것입니다. 그는 기소되었지만 배신당한 남편이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한 일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습니다. 톨스토이의 음악에 대한 생각이 소설 속의 여러 묘사와 포즈드니셰프라는 인물에 상당히 투영됐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쩌면 그의 오래된 음악 편력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음악 애호가였고 상당한 실력을 갖춘 피아니스트이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음악이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라고 말했던 때는 바로 유럽이 음악을 숭배하던 시대의 끝자락이었습니다. 그가 활동했던 19세기는 이른바 낭만의 시대였습니다. 베토벤 이후 음악의 절대성과 신성함이 의심할 여지없이 통용되던 때였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음악은 고통스러운 세계에서 구원으로 나아가는 문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지요. 이런 분위기에서 음악을 좋아했던 그가 낭만적 음악에 대해 극단적으로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음악에 대한 생각을 여념 없이 표출한 작품이 바로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는 문학과 음악이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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