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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오텔로 무대 사진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주세페 베르디 Giuseppe Verdi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으로, 그의 작품 오텔로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오페라입니다. 그의 음악적 성숙과 극적 표현의 정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인데요. 거장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질투와 사랑의 서사시를 살펴보겠습니다.

 

거장 베르디

 

베르디는 1813년 10월 10일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르 론콜레에서 태어나, 1901년 1월 27일에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식료품 가게 겸 여인숙을 운영하였고, 어린 베르디는 지역 교회 오르간 연주자로부터 음악 레슨을 받으며 일찍이 음악적 재능을 나타냈습니다. 1832년 5월 18세 때 고향을 떠나 밀라노로 가서 밀라노 음악원의 입학시험을 보았으나 합격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음악원의 입학 자격 연령 보다 네 살이나 더 많다는 것과 그의 음악이 서투르고 소박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는 밀라노에서 개인 교습을 받으며 음악적 재능을 계속 키워나갔습니다. 그의 첫 오페라 오베르토는 1839년 밀라노 스칼라극장에서 초연되어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 오텔로 등의 걸작들을 발표하며 오페라의 거장으로서의 명성을 확립했습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애국적인 독립정신을 표현하고 있는데요. 당시의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압박 하에 있어 완전한 독립국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오페라에 애국주의 정신을 드러냈는데요. 이 시기의 베르디는 이탈리아인으로서 애국자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베르디의 후기 작품들은 인간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성을 오페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모차르트와 비견할 만한 최고봉으로 평가받습니다.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모두가 비극이지만 셰익스피어의 명작을 오페라화한 오텔로는 비극 오페라의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일한 희극 팔스타프에서는 오페라 부파의 정신을 승화시킨 음악을 보여줍니다. 음악 이외의 일로도 바쁜 나날을 보낸 베르디는 1859년에 재혼하였고, 1861-1865년에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부와 명성을 누린 베르디는 1901년 1월 27일 밀라노의 한 호텔에서 향년 88세로 삶을 마감합니다. 이탈리아 오페라 사상 최고의 거장의 죽음을 슬퍼하여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20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오페라 오텔로

베르디는 아이다 이후로 오페라 작곡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출판가 줄리오 리코르디의 꾸준한 설득 끝에 마음을 바꾸고 오페라 오텔로 작곡을 결심했는데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베르디는 이미 맥베스를 오페라로 작곡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맥베스가 처음에는 성공적이었지만, 수정본이 파리에서 공연될 때는 큰 호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보다 드라마틱한 오텔로를 작곡해 보기로 결정합니다. 리코르디와 지휘자 프랑코 파키오는 베르디가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하도록 계획을 세웠는데요. 작곡가이자 대본가인 아리고 보이토가 오텔로의 대본을 맡기로 제안했습니다. 베르디는 보이토의 대본에 매료되어 작곡을 시작하기로 결정했으며, 처음에는 제목을 이아고로 할 생각이었지만, 결국 셰익스피어의 원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작곡 과정은 극도의 비밀 속에서 진행되었고, 그는 언제든지 초연을 취소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887년 2월 5일,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의 초연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음악적 성숙과 극적 표현의 정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오텔로는 그의 음악적 발전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전통적인 아리아와 레시타티브의 패턴을 지양하고, 바그너의 영향을 받아 레시타티브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새로운 스타일로 진화시켰습니다. 이는 오페라 음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오텔로는 베르디의 일생 마지막에서 두 번째 작품이 되었고, 그의 오페라 중 비극의 결정판으로 평가받으며, 음악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총 정리하는 의미에서 이 작품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오텔로 이후로는 마지막 작품 팔스타프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았습니다.

 

질투와 사랑의 서사시 

오페라 오텔로는 한마디로 질투와 사랑의 서사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15세기말 키프로스 섬을 배경으로 하며, 베네치아 공화국의 육군 장군인 무어인 오텔로와 그의 아내 데스데모나, 그리고 오텔로의 기수 이아고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오텔로는 데스데모나와의 사랑에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아고는 자신이 부관으로 승진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오텔로를 조종하여 데스데모나가 부관 카시오와 불륜을 저질렀다고 믿게 만듭니다. 이아고의 계략에 속아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게 된 오텔로는 결국 그녀를 죽이고, 진실을 알게 된 후 자신도 목숨을 끊습니다. 이 작품은 인간 내면의 질투와 사랑, 배신 등 복잡한 감정을 다루며,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베르디의 오페라 중 가장 드라마틱하고 감정적인 깊이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 오페라에서 베르디는 강렬한 감정의 파도를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이 작품의 주요 아리아들은 인간의 가장 깊은 감정을 드러내며, 각각의 아리아는 주인공들의 심리적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냅니ㅁ뻐하라!는 오텔로가 키프러스에 도착하여 승리를 선포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아리아입니다. 이 곡은 오텔로의 영웅적인 면모와 함께, 그의 내면에 숨겨진 불안과 취약성의 씨앗을 암시합니다. Credo in un Dio crudel 나는 잔인한 신을 믿는다는 이아고가 자신의 사악한 본성과 세상에 대한 비관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아리아입니다. 이 곡은 이아고의 악의와 계략이 얼마나 사악한지를 보여줍니다. Dio, mi potevi scagliar 신이여, 당신은 이 모든 치욕을 내게 주시나이까?는 오텔로가 자신의 운명과 데스데모나에 대한 의심에 절망하는 아리아입니다. 이 곡은 오텔로의 내면적 고통과 분노를 강렬하게 표현합니다. Ave Maria 아베 마리아는 데스데모나가 자신의 순결함과 오텔로에 대한 사랑을 하느님께 기도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아리아입니다. 이 노래는 데스데모나의 순수함과 비극적 운명을 감동적으로 전달합니다. Niun mi tema 내가 칼을 든 모습에 두려워 마오는 오텔로가 데스데모나를 살해한 후, 자신의 오해를 깨닫고 자살하기 직전에 부르는 아리아입니다. 이 노래는 오텔로의 회한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아리아들은 베르디의 음악적 천재성과 셰익스피어의 극적인 이야기와 완벽하게 어우러져 강렬한 드라마를 만들어냅니다. 극적인 순간들을 음악으로 완벽하게 표현한 오페라 오텔로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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