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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베르겐에 있는 트롤하우겐 그리그의 동상 사진
트롤하우겐 그리그 동상 ⓒ사세최

 

 

 

에드바르드 그리그는 노르웨이의 대표 국민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입니다. 노르웨이의 자연과 민족 정서를 담은 페르귄트 모음곡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솔베이지의 노래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받는 곡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리그, 페르귄트 모음곡, 솔베이지의 노래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그

그리그는 1843년 6월 15일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상인이자 베르겐 주재 영국 부총영사였던 알렉산더 그리그였으며,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이자 음악강사이기도 했던 주디테 하게루트였습니다. 그리그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피아노를 처음 배웠습니다. 1858년 여름 그는 노르웨이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올레 불을 만나게 됩니다. 그의 자질을 알아본 올레 불의 권유로 그는 멘델스존이 설립한 라이프치히 음악원에 입학합니다. 음악원에서 그는 모리츠 아웁트만으로부터 작곡법과 이론을, 에른스트 리히터로부터는 화성과 대위법과 푸가를, 카를 라이니케에게서는 작곡법을 배웠습니다. 피아노는 이그나츠 모셀리스를 사사하였으나, 그는 오르간에만 흥미를 나타냈고 다른 피아노 학과의 과목에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곳의 보수적인 교육 방식에 다소 불만을 가진 그는 스칸디나비아 기질을 간직한 채 많은 콘서트와 리사이틀을 경험하며 음악적 소양을 넓혀나갔습니다. 1863년 그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으로 옮겨가서 작곡가 닐스 게제를 만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또한 노르웨이의 젊은 국민주의 작곡가 리카르드 노르라크를 만나면서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노르라크와의 우정은 그가 노르웨이 민속 음악과 자신의 본질을 이해하고 국민주의 음악을 지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1867년 사촌인 니나 하게루프와 결혼했는데요. 그녀는 소프라노 가수였습니다. 그녀는 그의 노래들을 해석하고 보급하는 데 많은 기여를 하며 그의 뮤즈가 되었습니다. 1868년 여름 그리그는 니나와 딸 안렉산드라와 덴마크에서 휴가를 보내며 피아노 협주곡 A단조를 작곡했습니다. 피아노 협주곡의 발표를 계기로 1869년에 로마를 방문하여 리스트를 만나게 됩니다. 리스트는 그의 곡을 극찬하고 직접 연주하면서 관현악 부분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후에 그리그는 리스트에게 합창곡 남쪽의 수도원 문에서를 헌정하였습니다. 그의 가곡은 약 150곡이나 된다고 하는데 초기의 가곡에서는 그는 독일 낭만파 시인의 작품들에 곡을 붙였지만 후에는 노르웨이 극작가인 입센이나 비외른손의 시 이외에 베르겐의 젊은 시인들의 시도 작곡했습니다. 1874년 그의 나이 31세 때부터 노르웨이 정부는 그에게 종신연금을 주었고 이후 그는 작곡에만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1877년부터 그는 고향인 베르겐으로 돌아와 호숫가에 큰 집을 지었습니다. 1885년부터는 트롤하우겐이라 이름 지은 이곳으로 이사 와서  작곡에만 전념하며 그의 아내와 생활했습니다. 그의 명곡 페르귄트도 이때 작곡한 작품입니다. 그의 집 트롤하우겐은 현재 그리그 박물관으로 그의 삶과 작품을 기리고 있습니다. 1888년 그는 라이프치히에서 차이코프스키를 만납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음악에 감탄하며 좋은 관계를 맺으며 돈독한 사이로 지냈습니다. 그는 1907년 9월 4일 베르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음악은 노르웨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노르웨이의 자연과 문화가 담긴 그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페르귄트 모음곡

페르귄트 모음곡은 그리그가 노르웨이의 위대한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쓴 희곡 페르귄트에 곡을 붙인 작품입니다. 입센의 페르귄트는 노르웨이 민속설화를 소재로 한 희곡입니다. 게으르고 방탕한 청년이자 언젠가는 자신이 크게 성공할 것이라 장담하는 몽상가인 페르귄트의 삶과 모험을 다룬 작품입니다. 그리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음악으로 노르웨이의 자연과 민족 정서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입센은 1867년 이탈리아에서 페르귄트를 쓰며 처음에는 무대 공연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874년 입센은 그리그에게 연극의 음악을 작곡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리그는 이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리그는 곧 작곡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임을 깨닫고, "페르귄트는 진척이 느리며 가을까지 완성될 가능성이 없다. 매우 다루기 힘든 주제다"라고 토로했다고 합니다. 페르귄트는 1876년 2월 24일 크리스티아니아(현재 오슬로)의 몰러가덴 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그리그 자신이 지휘를 맡았습니다. 이 공연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리그는 원래 90분 분량의 오케스트라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이 중 가장 뛰어난 4개의 작품을 뽑아 제1모음곡으로 하고 나중에 다시 4곡을 선정하여 제2모음곡으로 재구성했습니다. 두 개 모음곡들은 각각 네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악장은 페르귄트 삶의 여정과 감정을 음악으로 재현하며 그리그의 음악적 재능과 노르웨이의 민속 음악에 대한 그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모음곡 제1번은 네 개의 악장인 아침의 기분, 오제의 죽음, 아니트라의 춤, 산속 마왕의 궁전에서로 구성됩니다. 아침 기분은 평화롭고 명랑한 아침을 묘사합니다. 플루트와 오보에의 섬세한 선율이 새벽의 고요함을 그려내며, 청아한 멜로디가 청중을 자연의 풍경 속으로 이끕니다. 오제의 죽음은 페르귄트의 어머니 오제의 죽음을 애도하는 악장입니다. 스트링 섹션의 애절한 선율이 슬픔과 상실감을 전달하며, 음악은 점차적으로 침묵 속으로 사라집니다. 아니트라의 춤은 경쾌하고 유혹적인 춤곡으로, 스트링 섹션의 민첩한 리듬과 선율이 아니트라의 매혹적인 춤을 연상시킵니다. 산속 마왕의 궁전에서는 점점 속도와 볼륨이 증가하는 반복적인 주제로 유명합니다. 강렬하고 역동적인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이 선율은 페르귄트가 산속 마왕과 그의 괴물들에게 쫓기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모음곡 제2번은 신부의 약탈과 잉그리드의 탄식, 아라비아의 춤, 페르귄트의 귀향, 솔베이지의 노래 네 개의 악장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신부의 약탈과 잉그리드의 탄식은 원곡에서는 2막의 전주곡으로 신부의 약탈이라는 짧은 테마가 관현악기들로 격렬한 절규를 합니다. G단조의 날카로운 음색과 스트링 섹션의 강렬한 개시부가 잉그리드의 슬픔을 드러냅니다. 아라비아의 춤은 아라비아 추장의 장면으로 경쾌한 활기를 띤 춤곡입니다. 동양의 이국적인 매력에 반해버린 페르귄트의 심리 상태를 묘사합니다. 명랑한 목관악기와 날카로운 타악기가 테마를 짜임새 있게 연결합니다. 페르귄트의 귀향은 폭풍이 휘몰아치는 해안의 저녁으로 페르귄트의 귀향을 그립니다. 돌아가는 길에 만난 폭풍 치는 바다를 목관악기의 크로마틱한 상승과 하강 그리고 강렬한 금관악기와 타악기로 묘사합니다. 그리그는 천지를 뒤엎는 무서운 폭풍우의 바다 정경을 실감 나게 표현합니다. 솔베이지의 노래는 페르귄트의 귀향을 애타게 기다리는 솔베이지의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 아름다운 멜로디입니다. 애수를 띤 바이올린의 선율로 모음곡을 부드럽게 마무리합니다.

 

솔베이지의 노래

솔베이지의 노래는 페르귄트 모음곡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 중 하나입니다. 페르귄트를 한없이 기다리는 솔베이지의 헌신적이고 변치 않는 사랑을 아름다운 선율로 표현한 곡입니다. 이 곡은 E단조로 시작하여 솔베이지의 순수함을 나타냅니다. 조성은 곡 전반에 걸쳐 유지되며 간간이 조성의 변화로 복잡한 감정을 표현합니다. 노르웨이의 민요를 바탕으로 한 애잔한 멜로디가 특징입니다. 차분히 기다리는 솔베이지의 심정을 나타내는 리듬은 단순하고 템포는 느리고 안정적입니다. 곡의 서정성을 강조하면서 청중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현악기와 목관악기의 선율은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는데요. 현악기의 섬세한 터치는 솔베이지의 섬세한 감정을, 목관악기의 명료한 음색은 그녀의 순수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화성은 주로 전통적인 조화를 따르며 간결한 멜로디로 풍부한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멜로디 라인은 솔베이지의 깊은 사랑을 나타내며, 간간이 나타나는 변조는 그녀의 내면의 갈등과 희망을 표현합니다. 솔베이지의 노래는 다양한 편곡과 해석으로 연주되어 왔으며,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와 같은 세계적인 가수들에 의해 녹음되기도 했습니다. 이 곡은 노르웨이의 국보급 가수 시셸 슈샤바가 불러 더욱 유명해졌는데요. 감성적으로 잘 풀어낸 그녀의 해석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조국을 사랑한 그리그는 솔베이지의 노래로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풍경과 민족적 정서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곡은 노르웨이의 자연을 상징하는 듯한 서정적인 멜로디와 함께 솔베이지의 순수하고 변치 않는 사랑을 잘 보여줍니다. 그의 음악은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으로 전 세계의 많은 음악 애호가들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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